성을 빼앗긴 사람들: 베트남에 응우옌이 이렇게 많아진 800년의 내력
베트남에서는 열 명 가운데 서너 명이 응우옌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성씨를 세지 않아 정확한 숫자를 아무도 모릅니다. 이 성이 어떻게 이렇게 많아졌는지는 1232년의 기록에서 시작합니다.

하노이 호텔 프런트에서 벌어지는 일
베트남에 도착한 첫날, 체크인을 하려고 여권을 내밀면 프런트 직원의 명찰이 눈에 들어옵니다. 거기 적힌 성이 응우옌입니다. 공항에서 타고 온 택시 기사의 등록증에도 같은 성이 있었고, 방금 지나온 길 이름에도 그 글자가 박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음 도시로 옮겨도 똑같습니다. 가이드도 응우옌이고, 아침에 쌀국수를 내준 식당 주인도 응우옌이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탑승권을 찍어 준 직원도 응우옌입니다.
베트남에서 한 집 건너 한 집이 이 성을 씁니다. 널리 인용되는 추정으로는 열 명 가운데 서너 명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김씨와 이씨와 박씨를 다 합쳐도 이 한 성에 못 미칩니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성인 스미스가 전체의 1%에도 못 미치는 것과 견주면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호텔 예약자 명단에 응우옌이 여럿 있는 일이 흔합니다. 직원이 성만 듣고는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이름 쪽을 다시 묻습니다. 프런트에서 성을 말했는데 되묻는다면 발음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닙니다. 이름 쪽 한두 글자를 더 말해 주면 그 자리에서 찾습니다.
베트남에서 사람을 부를 때 성을 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으로 부르면 그 자리의 절반이 뒤를 돌아봅니다.
그렇다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80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그 답은 한 왕조가 무너지던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이 성을 스스로 고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여행 전체를 준비하시는 분은 베트남 여행 가이드부터 보시면 순서가 잡힙니다.

그런데 아무도 정확히 세어 본 적이 없습니다
숫자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베트남 사람의 40%가 응우옌」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보셨을 겁니다. 그 숫자의 출처를 따라가 보면 길이 끊깁니다.
베트남 정부는 성씨를 세지 않습니다. 호적 제도가 개인의 신상만 관리하고, 전국에 어떤 성이 몇 명인지는 집계 항목에 아예 없습니다. 공안부가 운영하는 국가인구데이터베이스도 성씨 비율을 공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보는 숫자는 전부 연구자들의 추정입니다. 그리고 그 추정치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레쭝호아가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낸 연구인데, 거기 적힌 비율은 38.4%입니다. 다만 2005년에 나온 책이라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한편 「2022년 통계」로 소개되며 도는 31.5%라는 수치도 있습니다. 그 수치를 실은 문서에는 출처가 달려 있지 않습니다.
2등이 누구인지도 자료마다 다릅니다
응우옌이 1등이라는 데는 모두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아래가 흔들립니다. 2005년 자료는 쩐씨를 2등, 레씨를 3등으로 놓는데 다른 자료는 레씨를 2등, 쩐씨를 3등으로 놓습니다. 반올림에서 생긴 차이가 아닙니다. 순서가 통째로 바뀝니다.
넷째인 팜씨부터는 대체로 순서가 비슷합니다. 다만 비율은 자료를 바꿀 때마다 한두 퍼센트포인트씩 움직입니다. 그러니 이 대목에 나오는 비율은 전부 추정치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정부가 발표한 공식 수치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모든 자료가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자료를 펼치든, 상위 열몇 개 성씨가 베트남 인구의 90%를 넘습니다. 인구가 1억 명이 넘는 나라에서 메모지 한 장에 적을 수 있는 목록이 거의 전부를 덮습니다. 나머지 수백 개 성을 모두 합쳐도 열에 하나가 안 됩니다.
이 쏠림이야말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어떤 나라도 저절로 이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건 아주 구체적인 역사가 남긴 자국입니다.

1232년 봄, 한 집안이 성을 빼앗겼습니다
응우옌이 흔해진 첫 번째 계기는 축하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리 왕조가 무너지고 쩐 왕조가 들어선 직후의 일입니다.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사람은 쩐투도였습니다. 그는 새 왕조의 기틀을 다지면서 앞 왕조의 흔적을 지우려 했고, 그가 내세운 명분은 피휘였습니다. 윗사람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아랫사람이 쓰지 못하게 하는 동아시아의 오래된 제도입니다. 마침 쩐 태종의 할아버지 이름이 쩐리였습니다.
그 이름에 「리」자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리씨 성을 쓰던 사람들은 성을 바꿔야 했습니다. 바꿀 성으로 지정된 것이 응우옌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던 자리에서
이 개성에는 훨씬 무거운 사건이 붙어 있습니다. 화럼 땅의 타이드엉에서 리씨 일족이 역대 리 황제에게 제사를 올리던 자리에 참극이 있었다고 사서가 전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성을 바꾸고 이름까지 바꿨습니다. 리씨 종묘는 헐렸고, 제사를 지내는 자리는 딘방으로 옮겨졌습니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리 왕조 여덟 황제를 모신 사당이 서 있습니다. 하노이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라, 마음만 먹으면 오늘 오후에도 가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딘방 리 왕조 사당지도
이 기록을 남긴 쪽이 누구인가
베트남의 두 사서가 이 일을 적어 두었습니다. 『대월사기전서』와 『흠정월사통감강목』입니다. 뒤엣것은 응우옌 왕조의 국사관이 편찬한 책입니다. 응우옌 왕조의 학자들이 자기 왕조보다 앞선 시대에 응우옌이라는 성이 어떻게 불어났는지를 손수 기록해 두었습니다. 후에 황성에 가면 그 사서들을 편찬한 국사관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성을 바꾸면 족보가 끊깁니다
베트남 집안에서는 족보를 두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가정집이나 작은 식당에 들어가면 향이 놓인 제사상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 문화가 지금도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성이 바뀌면 그 기록이 한 번 끊깁니다. 바꾸기 전 조상과 바꾼 뒤 자손이 서류상 다른 집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성을 당한 집안들은 족보를 숨겨 두거나 구전으로 이어 갔고, 몇 대가 지나면 그 기억마저 흐려졌습니다.
지금 응우옌씨 가운데 자기 집안이 원래 무슨 성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뒤로도 성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1232년의 일이 한 번으로 끝났다면 응우옌이 이렇게까지 늘지는 않았을 겁니다. 베트남 역사에서 집단으로 성을 바꾸는 일은 여러 번 반복됐습니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졌습니다. 새 왕조는 공을 세운 사람에게 자기 성을 내려 주었고, 무너진 왕조 쪽 사람들은 자기 성을 숨겼습니다. 한쪽은 영광이었고 다른 쪽은 생존이었습니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결과는 같았습니다. 성씨의 가짓수가 줄었습니다.
공을 세우면 왕의 성을 받았습니다
1428년의 일이 그렇습니다. 레 태조가 명 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나라를 세운 뒤, 함께 싸운 사람들에게 자기 성을 나눠 주었습니다. 받은 사람이 221명입니다.
한 사람이 성을 받으면 그 아래 자손이 모두 그 성을 쓰게 되니, 몇 대만 지나도 레씨가 크게 불어납니다. 하루 사이의 결정이 수백 년치 인구 분포를 움직였습니다.
이런 방식을 국성 하사라고 불렀습니다. 상을 주면서 동시에 상대를 왕실 쪽으로 묶어 두는 방법이었습니다. 성을 받은 사람은 왕과 같은 집안이 된 것이니 배신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응우옌 왕조도 뒤에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응우옌씨 가운데는 원래 다른 성이었다가 하사를 받은 집안이 섞여 있습니다.
쩐씨도 한때 성을 잃은 쪽이었습니다
1462년의 일을 보면 이 이야기가 응우옌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리씨의 성을 빼앗은 쪽이 쩐씨였는데, 230년 뒤에는 그 쩐씨가 똑같은 이유로 성을 바꿔야 했습니다.
이번에도 명분은 피휘였습니다. 황태후의 이름에 「쩐」자가 들어 있었고, 레 성종은 쩐씨를 쯔엉씨로 바꾸라고 명했습니다. 지금 베트남에서 쯔엉씨는 상위 열 개 안에 드는데, 그 가운데 얼마가 이때 성을 바꾼 집안의 후손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막씨는 자기 발로 성을 버렸습니다
1593년 막 왕조가 무너진 뒤의 일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명령이 내려온 것이 없었는데도 후손들이 스스로 흩어졌습니다. 어떤 집안은 북쪽 산간으로 피했고, 어떤 집안은 성을 바꾸고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중 일부가 고른 성이 응우옌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응우옌은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성이었기 때문입니다. 흔한 성 안으로 숨는 편이 안전했고, 그렇게 숨은 사람들이 그 성을 더 흔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응우옌이 왕의 성이 되었습니다
1802년, 응우옌아인이 나라를 통일하고 황제 자리에 오릅니다. 연호를 자롱이라 했고,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가 이때 시작됩니다.
이 왕조는 1945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중간에 프랑스가 들어와 실권을 가져갔지만, 황제 자리 자체는 마지막까지 응우옌 집안이 지켰습니다. 응우옌은 140년 넘게 왕실의 성이었습니다.
이 기간에 응우옌은 권위와 정통성을 가리키는 이름이 됩니다. 관직에 나가려는 사람도, 장사로 자리를 잡으려는 사람도 이 성을 쓰면 한결 수월했습니다.
후에에 가면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황성 안 세묘에는 응우옌 왕조 역대 황제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도시 외곽에는 자롱제의 능이 있습니다.
후에 황성 세묘지도
왕족의 후손은 다른 성을 씁니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한 번 더 꺾입니다. 응우옌 왕조의 직계 후손들은 똔텃이라는 두 글자 성을 쓰고, 여성은 똔느를 씁니다. 응우옌을 쓰지 않습니다.
베트남 성씨는 대부분 한 글자인데 이것은 두 글자입니다. 왕족임을 드러내려고 갈라 나온 성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앞에서 본 통계에는 구멍이 하나 생깁니다. 똔텃과 똔느는 응우옌 비율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핏줄로 따지면 실제 응우옌 계통은 숫자로 보이는 것보다 넓습니다.
마지막 한 걸음은 프랑스가 놓았다고 전해집니다
1880년대부터 프랑스 식민정부가 근대식 호적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고정된 성을 적어 넣어야 하는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시골에는 성을 따로 쓰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등록 과정에서 성이 붙었고, 그 성이 대개 응우옌이었다고 이야기됩니다.
다만 이 대목은 앞의 개성 사건들과 성격이 다릅니다. 앞엣것들은 사서에 연도까지 적혀 있는데 이쪽은 당대 기록으로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널리 이야기되지만 「그렇게 전해진다」 정도로 읽으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후에 황성과 황제릉을 실제로 도는 방법은 후에 여행 가이드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름에서 어느 것이 성일까요
여기까지가 성이 왜 이렇게 쏠렸는지에 대한 답입니다. 이제 그 이름을 실제로 어떻게 읽는지로 넘어가겠습니다. 베트남 이름은 성이 맨 앞에 옵니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과 같은 순서입니다.
다른 점은 가운데입니다. 성과 이름 사이에 한 자리가 더 있어서 성과 중간이름과 이름 세 덩이로 나뉩니다. 응우옌티뜨엉비라는 이름이라면 응우옌이 성, 티가 중간이름, 뜨엉비가 이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부를 때 쓰는 것은 맨 뒤의 뜨엉비입니다.
중간이름이 성별을 알려 주던 시절
옛 방식에서는 중간이름 자리에 정해진 글자를 넣었습니다. 여성은 티, 남성은 반이었습니다. 베트남 이름에는 남녀 구분 없이 쓰이는 글자가 많아서 이름만 보고도 성별을 알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 이름에서 이 두 글자를 자주 봅니다.
요즘은 이렇게 짓는 집이 줄었습니다. 대신 뜻이 좋은 글자를 고릅니다. 밍은 밝다는 뜻이고, 응옥은 옥이고, 득은 덕이고, 바오는 보배이고, 뀐은 밤에 피는 꽃입니다. 그러니 요즘 이름의 가운데 글자는 부모가 아이에게 건네는 말에 가깝습니다.
같은 이름이 너무 많아서 생긴 자리
중간이름에는 다른 쓰임도 있습니다. 성이 열몇 개뿐이니 성과 이름만으로는 같은 이름이 쏟아집니다. 가운데 한 자리를 두면 구분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집안에서 항렬을 표시하거나 조상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가져와 기리기도 합니다.
중간이름을 두 글자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명함에 네 덩이가 적혀 있기도 한데, 읽는 법은 그대로입니다. 맨 앞이 성이고 맨 뒤가 이름이며 사이는 전부 중간이름입니다.


부를 때는 뒤에서부터입니다
베트남에서는 사장님도 의사 선생님도 이름 쪽으로 부릅니다. 처음 만난 사이든 오래된 사이든, 공적인 자리든 사적인 자리든 마찬가지입니다.
성으로 부르는 습관이 아예 없습니다. 앞에서 본 이유 때문입니다. 성이 열몇 개뿐이니 성으로 불러 봐야 아무 정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의는 다른 곳에서 챙깁니다. 이름 앞에 나이와 관계를 나타내는 말을 붙이는데 이 말이 한국어의 존댓말 비슷한 구실을 합니다. 자기보다 조금 위인 남성에게는 아인, 여성에게는 찌를 붙입니다. 자기보다 아래인 사람에게는 앰을 쓰고, 나이가 지긋한 분께는 남성이면 옹, 여성이면 바를 씁니다.
중간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응우옌티뜨엉비를 부를 때 티는 넣지 않습니다. 뜨엉비라고만 하고, 여기에 앞의 호칭을 붙이면 「찌 뜨엉비」가 됩니다. 이름이 한 음절이면 그 한 음절만 부릅니다. 명찰에 링이라고만 적혀 있다면 그렇게 부르시면 됩니다.
베트남 이름은 서류에 적히는 형태와 입으로 부르는 형태가 서로 다릅니다. 여행자가 가장 자주 걸리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명함을 받았을 때
명함을 받고 성을 불러 인사하는 습관이 있다면 여기서 한 번 걸립니다. 응우옌씨라고 부르면 상대가 잠깐 멈칫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도 쓰지 않는 방식이라 어색하게 들립니다.
어느 것이 이름인지 모르겠다면 맨 뒤 한두 음절을 부르시면 대체로 맞습니다. 그 한 걸음이 첫인사를 훨씬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호칭과 인사 방식은 베트남 예절과 팁 정리에 더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결혼해도 성은 그대로입니다
베트남 여성은 결혼한다고 해서 성을 바꾸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이름이 그대로 남습니다.
민법에 배우자의 성을 따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는 합니다. 다만 외국인과 결혼해 상대 나라 법을 따라야 하는 경우에 쓰이는 조항이고, 베트남 안에서는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가정에서는 아내와 남편의 성이 다른 것이 보통입니다. 응우옌씨와 결혼한 쩐씨는 평생 쩐씨로 삽니다.
결혼하면 성을 바꾸는 문화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이 점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가족 단위로 숙소를 잡을 때 명단에 성이 두 개 올라가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아버지 성을 따릅니다
아내가 성을 그대로 두는 대신 아이는 아버지 성을 받습니다. 한 집안이 대를 이어 같은 성을 쓰는 구조입니다. 새로 생기는 성이 없고 기존 성이 그대로 내려가니 응우옌이 줄어들 일도 없습니다.
요즘은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둘 다 넣는 집도 있습니다. 이때 아버지 성이 앞에 오고 어머니 성은 중간이름 자리로 들어갑니다. 서류상 성은 여전히 아버지 쪽입니다.
딸에게 다른 성을 붙이는 마을
하노이 외곽 손동사에서는 조금 다르게 합니다. 아들에게는 아버지 성을 그대로 주는데, 딸에게는 아버지의 중간이름을 성으로 붙여 출생신고를 합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난 남매의 성이 서류상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베트남에서 가족관계를 서류로 확인할 일이 있다면 성이 같은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부부는 원래 성이 다르고 남매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마을 이야기는 조금 뒤에 다시 나옵니다. 지금도 관청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변 도로 이름이 사람 이름이라는 것
다낭 미케 해변을 따라 난 큰길 이름이 보응우옌잡입니다. 해변 앞 호텔을 예약하면 주소에 이 이름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이름에 들어 있는 「응우옌」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그 성이 아닙니다. 보응우옌잡에서 성은 맨 앞의 보입니다. 응우옌은 중간이름 자리에 있습니다.
게다가 글자도 다릅니다. 성씨 응우옌은 Nguyễn이고 이 사람의 중간이름은 Nguyên입니다. 성조 부호가 붙는 자리가 달라서 아예 다른 글자입니다. 우리가 수십 번 적어 온 주소인데, 자세히 보면 응우옌이 아니었습니다.
다낭 보응우옌잡 도로지도
이 나라 길 이름은 대부분 사람 이름입니다
베트남에서 길 이름을 짓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을 길에 올립니다. 그래서 도시를 걷다 보면 반나절에 인명을 수십 개 지나가게 됩니다. 표지판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몇 줄로 적어 둔 곳도 많습니다.
호치민 시내 보행자거리 이름은 응우옌후에입니다. 이쪽은 진짜 응우옌입니다. 떠이선 왕조를 세운 광쭝제의 본래 이름입니다.
응우옌후에 보행자거리지도
여기에 얄궂은 대목이 있습니다. 광쭝제의 떠이선 왕조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자롱제, 곧 응우옌아인입니다. 서로 싸운 두 사람이 같은 성을 씁니다. 그래서 베트남 도시에는 응우옌으로 시작하는 길이 여러 개 있고, 그 길들의 주인공이 서로 적이었던 경우도 있습니다.
같은 이름의 길이 도시마다 있습니다
인물을 길에 올리다 보니 도시마다 같은 이름의 길이 생깁니다. 응우옌후에라는 길은 하노이에도 있고 후에에도 있고 나트랑에도 있습니다.
이건 알아 두면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곤란해지는 문제입니다. 차량 호출 앱이나 배달에 주소를 넣을 때 길 이름 뒤에 구와 도시까지 적어야 합니다. 길 이름만 대면 엉뚱한 곳으로 가고, 한 도시 안에 같은 이름의 길이 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응우옌후에 거리를 포함한 호치민 시내 동선은 호치민 여행 가이드에 있습니다.
보응우옌잡 도로변 숙소를 고르실 때는 다낭 숙소 지역별 정리를 참고하세요.



응우옌 말고 어떤 성이 있나
응우옌 다음으로 자주 만나는 성은 레와 쩐입니다. 앞에서 본 대로 둘 중 누가 2등인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그 뒤로 팜과 황과 무와 판이 이어지고, 여기까지 오면 이미 인구의 절반을 훌쩍 넘깁니다.
베트남 성씨는 대부분 한자에서 왔습니다. 지금은 로마자로 적지만 원래 글자가 있고, 그 글자를 보면 한국 사람에게도 낯익습니다. 응우옌은 阮이고 한국에서는 완이라고 읽습니다. 쩐은 陳이라 진이고, 레는 黎라 여이고, 팜은 范이라 범입니다. 황과 무도 각각 黃과 武입니다.
같은 성인데 표기가 둘인 경우
황과 무에는 표기가 두 가지씩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Hoàng이라 쓰고 남쪽에서는 Huỳnh이라 쓰는데 한자는 똑같이 黃입니다. 무도 마찬가지로 북쪽은 Vũ, 남쪽은 Võ입니다. 같은 집안이 남북으로 나뉘어 살면서 적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통계를 낼 때는 두 표기를 합쳐서 셉니다. 따로 세면 순위가 달라집니다.
리씨가 맨 아래에 있는 이유
상위 목록 맨 끝에 리씨가 붙어 있습니다. 왕조를 세웠던 성인데 지금은 백 명 중 한 명도 안 됩니다.
1232년의 일 때문입니다. 성을 바꾸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 리씨는 거의 사라졌고, 그 자리가 응우옌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니 베트남의 성씨 순위는 인구 통계라기보다 왕조 교체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어느 집안이 이겼고 어느 집안이 숨었는지가 그 목록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자에서 왔는데 중국보다 훨씬 몰려 있습니다
베트남 성씨가 대부분 한자에서 왔다는 말을 들으면 중국과 비슷하겠거니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국보다 가짓수가 적고 쏠림은 훨씬 심합니다.
베트남 땅에서 확인된 성씨는 천 개가 조금 넘습니다. 중국은 그 여섯 배가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쏠림을 보면 차이가 더 벌어집니다. 중국에서는 상위 백 개 성씨가 인구의 아홉 할가량을 덮는데, 베트남에서는 열몇 개가 같은 일을 합니다. 1위 성씨가 차지하는 몫도 중국은 한 자릿수인데 베트남은 30%대입니다.
글자는 같은데 읽는 법이 다릅니다
阮이라는 글자를 중국에서는 완에 가깝게 읽고, 베트남에서는 응우옌이라고 읽습니다. 한국에서는 완입니다. 陳도 마찬가지라 베트남에서는 쩐, 중국에서는 천, 한국에서는 진입니다. 한자가 지역을 건너간 뒤 나라마다 자기 소리를 붙여 천 년을 지나온 결과입니다.
그래서 베트남 성씨를 한자로 적어 놓으면 한국 사람에게도 한눈에 들어오는데, 베트남 사람이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들으면 전혀 못 알아듣습니다. 두 가지가 동시에 참입니다.
중국 성씨와 같은 뿌리인가 하는 질문
글자가 같으니 뿌리도 같으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답은 집안마다 다릅니다. 중국에서 건너와 자리 잡은 집안이 실제로 있고, 그런 집안은 족보에 그 내력을 적어 둡니다. 반대로 베트남에서 나고 자란 집안이 한자 표기만 빌려 쓴 경우도 많습니다.
응우옌의 경우, 지금 이 성을 쓰는 사람 대부분은 앞에서 본 개성 사건들을 거쳐 이 성을 갖게 됐습니다. 중국 완씨와 핏줄로 이어져서가 아닙니다.
소수민족은 사정이 또 다릅니다
베트남에는 54개 민족이 삽니다. 인구의 대부분은 낑족이고 나머지 53개 민족이 열 몇 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이 민족들에는 원래 한자식 성이 없던 경우가 많습니다. 호적을 만들면서 성을 갖게 됐고, 그 과정에서 같은 마을 사람이 통째로 한 성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파나 하장 같은 산간 지역에서 만나는 분들의 성이 도시보다 더 한쪽으로 몰려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 성씨 순위표에도 응우옌이 있습니다
이 쏠림은 베트남 밖으로 나가도 따라갑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발표한 2010년 성씨 순위표를 보면 그 모습이 그대로 나옵니다.
응우옌은 미국에서 38번째로 흔한 성입니다. 2000년 조사에서는 57위였으니 10년 만에 스무 계단 가까이 올라왔습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그 아래입니다. 순위표를 따라 내려가면 쩐과 레와 팜이 차례로 나오고, 그 뒤로 후인과 판과 보와 부가 이어집니다. 나오는 순서가 베트남 본국 순위와 거의 같습니다.
이민이 순위를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본국에서 흔한 성이 이민자 사회에서도 흔하다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모든 나라가 이렇지는 않습니다. 특정 지역 사람들만 이민을 가는 나라에서는 순위가 뒤집힙니다. 베트남계 이민은 지역이 크게 쏠리지 않았고, 그래서 본국 비율이 거의 그대로 건너갔습니다.
호주에서는 더 높이 올라가 응우옌이 상위 열 개 안에 들고, 프랑스에서도 50위권에 있습니다.
그래서 숫자가 또 엇갈립니다
해외 자료 중에는 응우옌을 쓰는 사람이 전 세계에 8,000만 명이 넘는다고 쓴 것도 있습니다. 반대로 베트남 인구의 15% 정도라고 쓴 자료도 있습니다. 15%는 앞에서 본 어떤 추정치와도 맞지 않고, 무엇을 세었는지도 밝히지 않은 숫자입니다.
이 성에 관해서는 출처 없는 숫자가 유난히 많이 돌아다닙니다. 비율을 말하는 자료를 보시면 언제 누가 무엇을 세었는지를 먼저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Nguyen은 한 음절입니다
로마자로 여섯 글자인데 읽을 때는 한 번에 소리 냅니다. 외국인 대부분이 여기서 걸립니다.
「응우옌」이라고 적으면 세 글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음절입니다. 「누구옌」이나 「엔구옌」처럼 나눠 읽으면 통하지 않습니다. 영어권에서는 win 앞에 sing의 끝소리를 붙여 보라고 설명하는데, 그렇게 하면 실제 소리에 꽤 가까워집니다.
북쪽과 남쪽이 다릅니다
하노이에서 듣는 소리와 호치민에서 듣는 소리가 같지 않습니다. 북쪽에서는 끝이 위로 올라가서 물음표를 붙인 것처럼 들리고, 중간에 한 번 걸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끝이 ng 소리로 닫히고 아래로 눌렸다가 평평해집니다.
둘 다 맞는 소리입니다. 지역에 따라 다를 뿐이라 어느 쪽을 흉내 내든 상관없습니다.
못 해도 괜찮습니다
베트남 사람들도 외국인이 이 소리를 정확히 내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성조까지 맞추려면 오래 연습해야 합니다. 다만 한 음절로 뭉쳐서 말하려고만 해도 알아듣습니다. 세 토막으로 끊어 읽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한국어 표기는 응우옌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구엔」이나 「응웬」으로 적힌 자료도 있는데 전부 같은 이름입니다.
아직도 성을 되찾으려는 마을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서에 적힌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성을 바꾸는 일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노이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한 흥옌성에 그런 마을이 있습니다.
콰이쩌우현 리엔케사에 깜커, 버이커, 깜버이라는 세 마을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 사는 사람 1,000명가량이 도라는 성을 씁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말은 다릅니다. 도는 진짜 성이 아니라고 합니다.
흥옌성 리엔케사지도
700년 전에 붙인 글자라고 합니다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약 700년 전 조상들이 정체를 숨기려고 도라는 글자를 앞에 붙였습니다. 진짜 성은 그 뒤에 오는 글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을 남자 이름은 도짱, 도반, 도바, 도꽝처럼 두 글자로 시작합니다.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여성 이름입니다. 이 마을에서 딸은 도를 붙이지 않고 본래 성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짱티쑤언, 반티투 같은 식입니다. 남자만 위장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700년 전이면 1300년대입니다. 앞에서 본 개성 사건들이 벌어지던 시기와 겹칩니다. 마을에 내려오는 구전이라 사서와는 무게가 다릅니다. 다만 시기는 맞아떨어집니다.
2002년부터 성을 고쳐 달라고 신청하고 있습니다
2002년에 도짱 집안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300여 가구분의 성을 고쳐 달라고 관청에 신청했고, 도바 집안 200여 가구가 뒤를 따랐습니다. 아홉 개 집안이 차례로 신청서를 냈습니다.
성 사법국은 우선 두 명에 대해 시범적으로 정정을 허용했습니다. 나머지는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성 300명가량이 호적 정정을 기다리느라 신분증을 받지 못했고, 그중 일부 학생은 대학 입시를 치르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700년 전의 위장이 지금 사람의 진학을 막은 것입니다.
하노이에도 같은 마을이 있습니다
손동사, 떤럽사, 꽁호아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딸이 아버지의 성을 쓰지 않는 마을들입니다.
베트남에서 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서에 적힌 옛날 일로 끝나지 않고 지금 관청 서류 위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800년 전에 시작된 이야기가 아직 결말을 못 봤습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이름이 막힐 때
마지막으로 실전 이야기를 하나 붙이겠습니다. 베트남 이름은 세 덩이인데 국제 규격의 여권 서식은 두 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실제로 문제가 생깁니다.
국제민간항공기구 규격은 이름을 성과 주어진 이름 두 칸으로 나눕니다. 베트남 여권에는 성과 중간이름과 이름이 순서대로 인쇄되는데 어느 것이 무엇인지 표시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공권을 끊을 때 어디를 어느 칸에 넣어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넣는 방법은 정해져 있습니다
맨 앞 한 덩이만 성 칸에 넣습니다. 응우옌티뜨엉비라면 응우옌입니다. 그리고 중간이름과 이름을 그 순서 그대로 붙여 이름 칸에 넣습니다. 티뜨엉비가 됩니다. 여권에 인쇄된 순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이름을 앞으로 빼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그대로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카타르항공은 베트남 이름을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안내하는 전용 페이지를 따로 운영합니다. 항공사가 한 나라의 이름 표기만을 위해 페이지를 만들어 둘 정도로 자주 생기는 문제입니다.
여권과 항공권의 이름이 다르면 탑승을 거절당할 수 있고, 출입국 심사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베트남 분의 예약을 대신 잡으실 일이 있다면 전화로 받아 적지 말고 여권 사진을 보며 그대로 옮기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전자비자를 신청할 때도 같은 규칙이 적용됩니다. 여권 아래쪽 기계판독부에 적힌 철자를 그대로 옮기시면 틀릴 일이 없습니다.
호텔에서는 이름 쪽을 말합니다
체크인할 때 성을 대면 명단에서 못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이 처음부터 이야기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예약 확인서에 적힌 이름 전체를 보여 주시거나 뒤쪽 이름을 말해 주시면 훨씬 빠릅니다.
이름 하나에 800년이 들어 있습니다
프런트 직원 명찰에 적힌 응우옌은 그냥 흔한 성이 아닙니다. 1232년에 성을 빼앗긴 사람들, 왕에게 성을 받은 공신들, 왕조가 무너져 숨어든 사람들, 호적을 만들며 성을 얻은 사람들이 800년에 걸쳐 같은 글자 하나로 모인 결과입니다.
그 사람들의 후손이 지금 호텔 프런트에 서 있고 택시를 몰고 식당을 합니다. 이름을 물어보면 대개 뒤쪽 한두 글자를 알려 줍니다. 그 글자가 그 사람을 가리키는 진짜 이름입니다.
여권 철자를 그대로 옮기는 요령은 베트남 비자·전자비자 안내에 적어 두었습니다.
입국할 때 걸리는 물건과 규정은 베트남에서 금지된 것들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